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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교수

 

Prof. Taikyue Ree

 

(1902-1992)

 

  

     이태규 교수는 1902년 1월 26일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55번지에서

  아버지 이용균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6남3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호는 학천.

  예산소학교 (나중에 예산보통학교)에 1910년 청강생으로 입학하여 1915년 4월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경성보통고등학교와 사범과 (1년 과정)을 졸업하고

  1924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일본교토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1931년 교토대학교에서 촉매화학분야로

  우리나라 최초의 화학분야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교토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1939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헨리 아이링 박사 등 세계적인 석학들과 함께

  연구했다. 1945년 서울대학교 이공학부장,

  1946년 서울대학교 초대 문리과대학장,

  1948년부터 1973년까지 유타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46년 대한화학회를 창설하는 등 한국

  화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화학 분야를 이끌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특히 유타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헨리 아이링 박사와

  함께 발표한 '비뉴턴 흐름에 관한 연구'는

  '리-아이링 이론(Ree-Eyring Theory)'으로

  불리며 세계 과학계에서 높이 평가되었고,

  이 이론으로 이태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에 도전한 최초의 과학자가 되었다.

  1973년 한국과학원 교수로 영구 귀국하여

  1992년 작고할 때 까지 한국과학원 종신

  석좌교수를 역임하면서 200 여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1946년 대한화학회 초대 회장,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 1955년 노벨수상자 후보, 1965년 노벨상 수상 후보 추천위원, 1966년에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고문에 추대되었다. 1974년 태평양과학협회(미국 소재) 이사로 선임되었고, 1975년 이론물리센터소장이 되었다. 미국화학회의 표창을 비롯해서 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한미국학술원상, 서울특별시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90평생 중 50여 년을 일본과 미국에 살면서도 창씨 개명을 거부하고 미국시민권을 포기하는 등 몸소 나라 사랑을 실천하여 명예를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과학자로는 처음으로 국립묘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참고:  대한화학회 편저, 우리 화학계의 선구자 02, 나는 과학자이다-우리나라 최초의 화학박사 이태규 선생의 삶과 과학'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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