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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화학회 역사 - 대한화학회 창립 과정

 

 

1. 해방 전후의 사정

 

      일제의 식민 정책으로 해방 이전에 국내에 있던 고등교육기관은 그들의 식민지 관리를 위한

  요원의 육성 또는 총독부 관리를 위시한 그들 거류민의 자제 교육을 위해 설립된 극소수의

  관립전문학교와 한 개의 대학 그리고 몇 개의 사랍학교가 있을 뿐이었고 그나마도 한국인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되고 있던 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한국인에 대한 입학허가가 제한되어 전체 정원의

  20-30%를 넘기지 아니하였다(25년사- p 42).

 

2. 대한화학회 창립

 

      1946년 6월 26일 경성대학 법문학부 회의실에서 11명이 참석해서 당시 경성대학 이공학부장이던

  이태규 박사를 의장으로 선출한 다음 간담회 형식으로 조선화학회 창립을 위한 발기인 중 몇 사람이

  그동안 기초한 회칙 초안을 검토하였다. 그리고 발기인 수를 더 늘이고 7월 7일 정식 발기인회를

  소집키로 하였다.

 

    최초의 발기인 및 보선된 발기인

      이태규, 안동혁, 이승기, 김동일, 김학수, 김양하, 김정수, 유한상, 도봉섭, 조백현,

      최호영, 최삼열, 여동구, 이기녕, 나익영, 이범순, 이봉희, 전풍진, 김호식, 박장열,

      김기우, 한구동, 민태학, 박원희, 조재한, 김호직, (이상 최초의 발기인)

      유전, 이남순, 안재학, 박천권, 손동혁, 정태하, 김상열, 최재학, 홍영표, 신윤경 (이상 보선된 발기인)

 

   창립발기인총회는 1946년 7월 7일 오후 1시 경성공업전문학교 회의실에서 16명의 발기인이

   참석하여 개최되었다. 이어서 오후 3시 경성공업전문학교 강당에서 53명의 화학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화학회 창립총회가 열렸다.  안동혁 박사를 임시의장으로 선출하고

   창립발기인회에서 채택된 회칙을 무수정 통과시키고 발기인총회에서 선출한 초대 임원 후보 전원을    만장일치로 승인하여 조선화학회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회장   : 이태규 (李泰奎)

    부회장: 김학수

    간사   : 안동혁(회계), 이승기 (편집), 김용호 (서무)

    평의원: 발기인 전원 (36명)

 

    1949년 오건기 씨가 화학회지의 발간 지원을 위해 30만원을 기부하였다 (이후 기부금을 합쳐

    총계 50만원).

 

    1949년 9월 17일에 열린 간사회에서 '조선화학회'를 학회의 명칭을 '대한화학회'로 변경하기로

     의결하였고 학회지의 이름을 '대한화학회지'로 결정하였다.

     대한화학회지 창간호는 1950년 6월에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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